나는 뭔가를 할 때 까페에서 하면 가장 능률이 높다.
하다못해 딴짓을 해도 까페에서 제일 잘 한다;;;;
그래서 식당은 그냥 적당한 밥집이나 학교식당을 먹더라도 까페는 여기저기 가보는 걸 좋아한다.
물론 다른 곳도 다 그렇겠지만, 이상하게 까페에서 시선의 균형 구조에 대해 제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창문이 탁 트여있으면 안쪽과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창이 탁 트인 가게로 가면 중간중간에 바깥은 보면서 놀 수 있다.
옛날에 들었던 영상 관련 교양 수업에서, 어느 주차의 주제가 권력으로서의 시선이었다.
미셸 푸코의 파놉티콘에서, 권력이 불균형하게 간수들에게만 주어지는 이유는 죄수들은 볼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까페도 그런 시선적 균형이 적용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2층에 위치한 까페는 까페 안의 사람들만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지하에 있는 까페는 단절된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시선 걱정 없이 자기 할 일을 하게 되고.
그런데 1층에 위치한 가게는 묘하다.
물론 막혀있는 곳은 좀 다르지만, 대체로는 한면이 유리창으로 트여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시선의 방향이 평등하다.
안에 있는 사람도 거리낌없이 밖을 구경할 수 있고, 밖을 지나가는 사람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서로가 상대방의 구경거리가 되는데, 자기가 주체인 동시에 객체가 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실제로 가게에 앉아있는 사람은 일종의 마네킹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똑같이 처음 가는 가게라면, 아무 손님도 없는 가게보다는 한명 쯤 있는 가게가 더 확실해보이고.
그래서 눈을 마주치면 더 어색한 거다.
상대방이 구경할 객체라고 생각하고 권력 구조에 있어서 우위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가 그 불균형이 반대로 흔들리게 되는 깨달음의 순간이니까 말이다.
보는 사람은 그냥 구경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행위가 은밀한 행위가 아니고 그 시선의 방향이 순식간에 뒤틀릴수도 있다는 그 느낌이 참 묘하다.
창문을 기준으로 양 측 모두의 사람이 동물원의 관객이자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다.
소심한 노출증(Exhibitionism)과 관음증(Voyeurism)의 무의식적 발현 아닐까ㅋㅋㅋ
그래서 요즘 다니는 반지하 까페 튠업이 좋은 거다.
창문은 탁 트였는데 진입로를 한 계단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시선이 걸러지거든.
하다못해 딴짓을 해도 까페에서 제일 잘 한다;;;;
그래서 식당은 그냥 적당한 밥집이나 학교식당을 먹더라도 까페는 여기저기 가보는 걸 좋아한다.
물론 다른 곳도 다 그렇겠지만, 이상하게 까페에서 시선의 균형 구조에 대해 제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창문이 탁 트여있으면 안쪽과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창이 탁 트인 가게로 가면 중간중간에 바깥은 보면서 놀 수 있다.
옛날에 들었던 영상 관련 교양 수업에서, 어느 주차의 주제가 권력으로서의 시선이었다.
미셸 푸코의 파놉티콘에서, 권력이 불균형하게 간수들에게만 주어지는 이유는 죄수들은 볼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까페도 그런 시선적 균형이 적용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2층에 위치한 까페는 까페 안의 사람들만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지하에 있는 까페는 단절된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시선 걱정 없이 자기 할 일을 하게 되고.
그런데 1층에 위치한 가게는 묘하다.
물론 막혀있는 곳은 좀 다르지만, 대체로는 한면이 유리창으로 트여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시선의 방향이 평등하다.
안에 있는 사람도 거리낌없이 밖을 구경할 수 있고, 밖을 지나가는 사람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서로가 상대방의 구경거리가 되는데, 자기가 주체인 동시에 객체가 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실제로 가게에 앉아있는 사람은 일종의 마네킹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똑같이 처음 가는 가게라면, 아무 손님도 없는 가게보다는 한명 쯤 있는 가게가 더 확실해보이고.
그래서 눈을 마주치면 더 어색한 거다.
상대방이 구경할 객체라고 생각하고 권력 구조에 있어서 우위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가 그 불균형이 반대로 흔들리게 되는 깨달음의 순간이니까 말이다.
보는 사람은 그냥 구경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행위가 은밀한 행위가 아니고 그 시선의 방향이 순식간에 뒤틀릴수도 있다는 그 느낌이 참 묘하다.
창문을 기준으로 양 측 모두의 사람이 동물원의 관객이자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다.
소심한 노출증(Exhibitionism)과 관음증(Voyeurism)의 무의식적 발현 아닐까ㅋㅋㅋ
그래서 요즘 다니는 반지하 까페 튠업이 좋은 거다.
창문은 탁 트였는데 진입로를 한 계단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시선이 걸러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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