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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of the World] 실연한 사람들을 위한 동화

(출처: The End of the World 텀블러)

우연히 구글 플레이에서 찾은 게임, The end of the world.
전체 루트를 플레이하는 예상 시간이 15분에서 20분밖에 안 되는 짧은 게임이다.
잔잔한 느낌이 좋았다.

[※ 이 아래로는 스포일러성 내용이 나올 예정입니다. 게임을 하실 분들은 읽지 마세요.]




The End of the World는 사이드 스크롤로 플레이어가 맵을 탐험하는 형태이다.
조작도 매우 간단하다.
1. 화면의 왼쪽 끝, 오른쪽 끝을 누르면 해당 방향으로 화면이 스크롤된다.
2. 반짝이는 인터랙티브 요소이다. 누르면 된다.
3. 시계를 누르면 옛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게 전부다.


게임 설명에서 제작자 공식으로 실연으로 가슴앓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이라고 해놨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한 남자의 끝나버린 세상 속에서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고 어느 방향이든 나아가야 한다.




세상이란 남자의 마음 상태다.
세상의 끝이라는 건 이별 전까지 남자가 익숙하게 알았던 현실이 끝났다는 거다.
그걸 반영하듯이 게임이 진행되는 기준인 현재는 인셉션의 림보 같은 만신창이다.
그 폐허 속에서 시계를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는 거다.

시계로 나뉘는 이별 전과 후의 세상은 그 대비가 뚜렷하다.
플레이하면서 색채의 대비가 가장 크게 느껴졌다.
현재는 우울로 푸르스름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에 반해 과거는 추억이지만 오히려 현실보다 따뜻하고 빛난다.
직접적으로 떠나간 연인의 모습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열기 어린 붉은색을 사용한다.

그 외에도 현재는 동작 효과음 외엔 가라앉은 적막뿐인데 과거는 안정적인 선율이 흐른다.
그야말로 현재는 시궁창이거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이 폐허 속에서 남자는 추억의 장소를 찾아 아름다웠던 돌이켜보는 여정을 떠나야 한다.
그 여정에는 남자의 심리와 생각의 변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
한번 갔다올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더 부서진다.
미묘한 디테일도 있다.
플레이어가 직접 입혀야하는 옷을 입히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아무래도 실연한 후에 피폐한 상태라 그런지, 매우 느리다.
느리게 걸어가서 화면 전환도 느리다.
한 세번까지는 괜찮은데 그 뒤로는 좀 애닳는다.


요소가 많은 게 아니라서 이것저것 얘기하지는 않겠다.
다운로드한 자리에서 그대로 끝낼 수 있는 게임이라 하나하나가 다 스포다.

다만 기술적인 경험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마무리가 좀 투박하다.
다 끝내고 나서 정말 그곳에는 아무도 없는 걸로 끝난다.
나가는 것조차 어떻게 나가야할지 모르겠다.
깔끔하게 예쁘게 빠져나가는 게 아니고 까만 화면밖에 없어서 황망했다.
그냥 안드로이드 버튼으로 나가도 되긴 하지만 보다 친절하게 내보내줄 수도 있지 않았나 한다.

그리고 세이브가 없다.
이어서 못한다.
노림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칼을 빼들었으면 무라도 썰라는 것처럼 일단 실행하면 그대로 끝내는 것이 좋다.
이걸 모르는 상태에서 버튼을 잘못 눌러서 껐는데 처음부터 시작하니까 상당히 허망했다.
처음 튜토리얼 단계에서 이것도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The End of the World를 플레이해보면서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스토리텔링이었다.
일단 일반적인 미디어에서 보여줄 수 없는 관객의 스토리 통제를 깔끔하게 경험해볼 수 있었다.

이야기를 풀어낼 때 과거의 아름다운 모습과 현재의 비참한 모습이 대비되는 형식은 꽤 흔하다.
영상 같은 경우에는 두 시점의 이미지를 전환하면서 그 점을 표현한다.
순간순간 캐릭터의 내적인 혼란을 반영해서 휙휙 바뀔 수도 있고,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을 길게 늘여서 진득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기존 미디어는 스토리텔링을 나타내는 방식이 얼마나 혁신적이든지 제작자가 순서와 호흡을 제시해 놓았으니 보는 사람이 그걸 따라가야 한다.

영상 이야기를 한 것은 이 게임이 영상과 유사한 비율로 만들어져서 거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같아보이는 화면인데, 게임이라 각각의 이야기의 흐름을 플레이어가 통제한다.

플레이하면서 내가 가조고 싶은 순서에 따라 이야기도 통제할 수 있다.
만약 영상을 통해 유사한 이야기를 본다면, 이미 지나가버린 이야기는 흘러가버리고 그 후에 어떻게 되어있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이 게임은 느린 걸음속도만 참을 수 있다면 직접 돌아가서 그 곳은 어떻게 되었나 등을 확인해볼 수도 있다.
혼란스럽게 꼬일 수도 있지만 나름 그 부분을 정리하기 위한 안배도 있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시계 버튼에서 나왔다.
시계 버튼을 통해 호흡을 플레이어가 통제한다.
진득하게 과거의 모습을 액자 속 그림처럼 감상해도 좋고 극적인 대비를 위해서 반복 터치하면서 마구 바꾸어봐도 좋다.
내가 영상 편집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 실시간으로 직접 편집하는 기분을 느꼈다.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시계 버튼을 얼마나 누르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핵심이 바뀐다.


게임의 형식을 통해서 아예 결말까지 플레이어의 선택에 맡겨버리는 것도 좋았다.
그야말로 취존...!
선택에 따라 결말이 바뀌는 게임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게임 내 스토리텔링은 대부분 어떠한 갈등을 해소하거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게임의 경우 주인공이 죽는다든가 하는 배드 엔딩은 잘못된 느낌이 강하다.
인터랙티브 요소에 의해 이야기가 바뀌어도 뚜렷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으니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틀린 결말은 없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게임의 큰 줄기는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바뀐다.
몇 가지 루트로 나뉜 오픈 엔딩이지만, 개발자가 해당 소재에 대해 생각한 바를 들려주는 것에 가깝다.
똑같은 이야기를 겪었지만 선택은 플레이어의 손에 맡기는 거다.
그래서 전부 알고 싶으면 게임을 여러 번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제작자가 안배한 요소들을 보다 세밀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 전에 몰랐던 걸 다음 회차에 알아내기도 하고, 이야기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냥 한 번 플레이하고 끝냈다는데 내가 찾아낸 결말은 세 개였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게임으로 풀어내는 서사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는데 이 게임을 하면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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