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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ndscape] 독특한 방향으로 나아간 게임

(출처: Blindscape 공식 홈페이지)

우연히 발견했는데 플레이 컨셉이 엄청 특이했던 게임.
공식 홈페이지에서 많이 잡아야 10분이면 플레이가 끝난다고 했다.
플레이해보니까 확실히 그 정도 걸린 거 같다.
한번씩 생각날 때마다 다시 해도 재미있다.
이것도 단편소설 보는 느낌이다.

[※ 이 아래로는 게임의 줄거리를 포함, 스포일러의 향연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한 남자가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를 찾아 떠나는 게임이다.
그런데 그 주인공의 컨셉이 매우 독특하다.

주인공이 살아가는 세계는 디스토피아다.
구세계는 가상 현실을 위시한 감각적인 자극을 극도로 즐기다가 거기에 중독되어 멸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1984»나 ‹이퀼리브리엄›처럼 감성 문화를 탄압하는 독재 사회가 되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둘이서 사회에서 금기되는 예술을 남모르게 즐기곤 했다.
주인공 같은 경우에는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어떤 이야기였을까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하루는 저녁에 보던 포스터를 무방비하게 책상 위에 올려놓았는데, 하필이면 그 때 닦달을 해도 꿈쩍도 안하던 건물주가 집수리를 하러 왔다.
주인공의 범법 행위는 그렇게 적발되었다.

체포 과정에서 여자는 즉결사살당한 거 같다.
남자는 소설이나 영화를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영화 포스터를 보고 즐겼다는 이유로 눈이 지져졌다.
사상경찰이 포스터를 밀반입한 경로를 자백하면 한 눈은 남겨준다고 했는데 거짓말을 해서 두 눈을 다 뺏겼다.
넋두리를 들어보면 눈을 인두로 지지는 과정에서 눈물샘까지 지졌기 때문에 눈물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게임을 실행하면 처벌이 죄질에 합당하다고 말하는 재판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후 라디에이터 소리와 법정의 상황만 되풀이해 생각하면서 몇 개월을 방에 처박혀 살았다.
그러다 문득 자기 인생에서 통제할 수 있는 건 그 끝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여자와 함께 가보고 싶었던 구세계의 폐허로 가기로 결심한다.
그 여정을 게임으로 표현했다.



길게 썰을 풀어놓았듯이 주인공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
게임은 남자의 입장에서 진행되므로 화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출처: 구글 플레이 스토어)

게임 설명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여러분은 절대 볼 일 없을 엄청나게 예쁜 3D 환경을 구축했다'고 한다.
허.

어쨌든 주인공처럼 플레이어도 소리에 의존해서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폰 내지는 헤드셋이 매우 중요하다.
좌우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 차에 따라서 방향도 찾고 그런다.

게임 전체에는 남자의 나레이션과 주변 환경에서 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화면은 없지만 소리를 열심히 짜넣어서 좀 노력하면 평소에 하던 게임의 비주얼처럼 상상도 할 수 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비행사가 그려주는 양 상자하고 똑같은 원리랄까.


이 게임에서 노리는 한 방은 노래다.
플레이어는 과정 전체에서 그래픽을 박탈당한 상태고 소리 자체도 환경을 충실하게 묘사할 뿐이다.
그리고 플레이를 하면서 사운드에 극도로 집중하게 된다.

남자의 여정에 끝이 다가오면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이 단계에 도달했을 때, 남자는 시각적 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노래만 들으면서 그 뒤에 있을 미지에 대해 상상해본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이 그의 연인이 갈구했고 그를 장님으로 만든 예술을 즐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 하나를 보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문을 연다.

감각적 묘사가 박탈당했던 검은 화면에서 예술이 등장한다는 것은 감동적인 경험이다.
내가 잠깐 몇 분 플레이하는 동안 감각을 배제했다가 노래를 들어도 찡한데, 평생 그런 경험이 없었을 주인공이 느낄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거다.

그리고 문을 연 이후 남자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큰 결심을 하고 문을 열긴 했으나 그 곳에 있는게 새로운 도피처일지 죽음일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의 여운이 더 강하다.



Blindscape는 화려한 그래픽이 주를 이루는 게임 시장에서 비주얼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소리에 집중해서 참 독특했다.
그 정도가 아니라 피날레의 음악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소재를 음악 마케팅하고 결합해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면 어떨까 싶다.
게임을 통해 이야기의 프리퀄을 풀어낸 다음 노래 티저를 넣고, 본 트랙을 발표할 때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더 나아가 진행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노래도 정말 좋다.
플레이하고 나서 들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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