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Viki) |
[※ 아무 생각 없이 스포를 계속 쓸 예정입니다.]
스트리밍 사이트 비키에서 만든 오리지널 시리즈.
인터넷에 우리나라 드라마 1분 요약이라고 돌아다녔던 게시물의 출처이기도 하다.
비키 쓰면서 한국에 풀리기만 기다렸는데, 비키에서는 국가제한으로 볼 수 없었다.
트위터에서 비키 계정한테 울었더니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다고 대답해주더라.
그래서 당황스럽게도 비키 계정이 있는데 넷플릭스에서 봤다.
진심 내 등잔 밑이 어두운 일이었다.
1.
이 드라마는 한드 덕질을 하는 클레어가 자기 최애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는 가상의 세계, 드라마월드에 생긴 위기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나와는 정반대의 케이스다.
심지어 국가도 정확하게 대치된다.
쟤는 미국에 살면서 한드 덕질하는 애, 나는 한국에 살면서 미드 덕질하는 애…
캐릭터 간의 역학 관계나 전개 상에서 엄청나게 재미있다는 생각은 잘 안 든다.
우리나라 토박이로서, 여덟시 드라마 안 보다가 급작스럽게 눈 앞에 틀어줘도 어느 캐릭터가 무러죽일 포지션이고 누가 주인공이고 누구랑 잘 될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대충 결말은 보이더라.
드라마가 작정하고 한국 드라마 요소들 다 우겨넣어서 아예 세계관 법칙으로 정렬해놓은 곳인데.
그렇지만 주인공이 덕질한다는 점에서 매우 공감이 가는 데다가, 우리나라 드라마의 온갖 기믹들을 그 짧은 시간에 모두 활용한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서양인이 김치싸대기를 날릴지 어떻게 알았겠어.
거기다가 우리나라 드라마가 소재이니만큼 각 회가 끝날 때마다 스틸컷으로 주밍 트랜지션과 함께 다음이 궁금한 부분에서 감질나게 참 잘도 끊어내더라.
그런데 그 부분 은근히 잘 봐두어야 한다.
그냥 마지막 장면 요약 같은데 한두 컷씩 복선 사진도 있다.
2.
첫 시즌은 전체 10에피소드이고 각 에피는 10분에서 15분 사이의 웨비소드에 가까웠다.
그래서 한 시즌을 연달아봤는데 드라마 한 시즌을 본 기분보다는 독립영화 한 편 본 것에 가까운 시간이 들었다.
한 시즌 정주행이라고 말하면서 두 에피 정도 본 시간밖에 안 드니까 기분 오묘하더라.
〈드라마월드〉는 한 에피소드가 최소 30분에 표준이 50분인 기존의 드라마에 비해 체감 시간이 엄청 짧았다.
그리고 내가 본 웨비소드들은 짧은 시간으로 구성해서 옴니버스식으로 한 화 내에서 이야기가 잘 끝나기도 했고.
그런 드라마들의 주 목적은 드라마의 팬들을 챙겨주기 위해서 휴방 기간 동안 공개되거나 콘텐츠 유통 플랫폼 자체로의 인구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콘텐츠 마케팅의 결과물이었다.
〈드라마월드〉는 오히려 장편 광고와 드라마 사이에 위치한 듯 보였다.
내가 봤던 웨비소드나 타 스트리밍 사이트들의 웹 오리지널의 사이쯤?
그 드라마 내에 비키라는 플랫폼의 특징을 엄청 녹여놓은 광고 영화 같이 더 느껴졌다.
사실 드라마로 나온 것도 플랫폼 자체가 드라마가 제일 많은 플랫폼이라서 영화로 만들 수 있었지만 일부러 쪼개놓은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콤팩트하다.
(출처: Viki) |
비키는 스트리밍 사이트 중에서도 아시아 콘텐츠를 중점적으로 밀어주는 사이트이다.
전세계 드라마를 다룬다고 하고, 드라마 분류의 국가 필터를 보면 온갖 나라가 다 있다.
하지만 해당 국가 태그에 해당하는 콘텐츠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있는 작품들도 퍼블릭 도메인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오래된 것들이 있다.
나는 메인 화면을 헤매면서 국가 구분이 미구권으로 되어있는 걸 〈드라마월드〉 말고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클레어가 한드 좋아하는 젊은 세대 미국인인 이유가 현재 중점적으로 타겟팅하고 있는 세그먼트가 아시아 콘텐츠를 이용하는 젊은 세대라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비키를 이용하는 고객층에 주인공 같은 사람들이 상당할지도 모른다.
많을 거 같은데 어디서 확인을 따로 하지는 않았으므로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고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을 캐스팅해서 그들이 좋아하는 드라마의 특징을 다 녹여낸 드라마를 찍은 것이니, 팬베이스에 대한 서비스로도 톡톡히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이거 보다가 웃겨서 친구한테 짧은 영화 한편 정도 보는 시간 밖에 안 걸린다고 꼬셔서 보여주는데 주인공이 미친듯이 잘생기지 않아서 놀랐다고 했다.
우리나라 남주는 꽃사슴 같이 예쁜 애들이 많이 하니까 그렇게 기대했을 수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나름 잘생겼고 혼혈이고 우리나라 드라마에 나온 적도 있다는 이유를 떠나서, 제일 중요한 점은 션 리처드가 비키 온라인 광고 주인공이라는 거다.
저 사람이 남주를 맡으면서 〈드라마월드〉와 비키라는 플랫폼의 연계성을 강화해 주는데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국 넷플릭스에 〈드라마월드〉가 뜨고 며칠간 계속 보도 내지 공식 계정의 홍보가 이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넷플릭스 오리지널보다는 볼보나 BMW 같은 기업에서 공개하는 단편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3.
광고를 보면, 비키에서도 강조하고 나도 훌륭한 차별화 요소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보여준다.
언어다.
비키는 다른 플랫폼들과 달리, 전문 자막제작자들보다는 집단기여를 통해 자막을 완성하는 시스템이다.
번역에 참여하는 자막제작자들은 따로 비용을 제공받지는 않지만, 대신 콘텐츠 접근에 있어서 훨씬 많은 옵션이 주어지는 걸로 추정된다.
다만 단점이라고 한다면 자막 작업이 공동제작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언어마다 진행도가 다르다.
팬덤에 비키를 이용하면서 대의가 있는 사람만 있다면 그 언어로의 번역이 진행된다.
예를 들면, 〈랑야방: 권력의 기록〉.
비록 티빙에서 봤지만 내가 아는 드라마가 그것 밖에 없으니 구경을 갔는데, 영어, 한국어는 기본이고 불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자막이 완료되어 있었다.
다만 이 플랫폼은 우리말 자막은 오히려 빈약하다.
그래서 졸지에 미드 볼 때나 깔아놓는 영어로 중드를 보고 있다.
그런데 한자문화권에서 살면서 이미 한자에 익숙한데 영어로 한자를 풀어써놓은 걸 보니까 아무 설명없이 음만 써주는 것보다 더 모르겠다.
어쨌든 이렇게 언어 지원을 차별화 요소로 밀고 있는데, 그 점이 드라마에서도 드러난다.
클레어는 오랜 덕질을 통해 언어적 잠재역량은 훌륭할지 모르나 우리말은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비키가 구축한 드라마월드에 들어왔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언어로 자막이 자연스레 지원되어서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의사소통을 한다.
〈드라마월드〉에서 보여주는 자막의 형태도 광고에서 보여주는 형태하고 상당히 유사하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전반에서 나오는 우리말의 퀄리티에 대해서 많은 감탄을 했다.
물론 모어가 영어라서 발음이 어색한 게 많이 들리지만, 다른 미드에서 나오는 것에 비하면 아주 훌륭한 퀄리티였다.
배두나가 나왔던 〈센스8〉에서 우리나라의 쟁쟁한 배우들을 한무더기 모셔다 놓고 찍었을 때나 우리말이나 배경 고증이 볼만 했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우리말은 쟈눼의 좡잉이신 수준인데 〈드라마월드〉는 그에 비하면 정말 한국어 고급 구사자들을 골라다 써줬다.
조금 아쉬운 건 우리나라 드라마를 K드라마로 번역했던 거.
주인공이 미국애라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물론 미국에서는 한류에 해당하는 많은 것들에 K-를 접두사로 사용해서 장르를 표현했겠지만, 우리나라는 음절 따오는 구조다.
우리는 한드, 미드, 중드, 영드 그렇게 부르니까 한드라고 써줬으면 더 구수했을 거 같다.
4.
많은 아시아 드라마 중 제일 먼저 한드로 드라마를 만들기로 한 이유 중에는 드립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드립 중에 이런 게 있다:
미드는 경찰이 나오면 수사를, 의사가 나오면 진료를 한다.
일드는 경찰이 나오면 경찰이 교훈을,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교훈을 준다.
한드는 경찰이 나오면 경찰이 연애를 하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연애를 한다.
그야말로 명문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무슨 장르이든 간에 연애가 있다.
최근작 중 연애보다 복수극과 암투를 진행할 줄 알았던 〈용팔이〉조차 결국에는 폭풍 같은 연애를 하면서 나를 실망시켰다.
8시 안방 극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우리나라 드라마는 무슨 장르이든 간에 연애가 있다.
최근작 중 연애보다 복수극과 암투를 진행할 줄 알았던 〈용팔이〉조차 결국에는 폭풍 같은 연애를 하면서 나를 실망시켰다.
최소 십 수년 간 연애치정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의 감정은 전세계적으로 일정한 보편성을 지닌다.
연애도 만국공통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드라마를 제일 먼저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남주와 여주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드라마에 등장했던 기믹과 짤방감 장면들을 다 때려박았다.
제일 웃기는 건 아무래도 김치싸대기.
아직도 왜 김치로 싸대기를 때려야 했는가는 모르겠다.
이해는 안 되지만 맥락을 떠나서 웃기니까, 그냥 등장만 해도 웃기다.
〈드라마월드〉에서의 김치싸대기는 원 장면만큼, 혹은 더 어이없다.
원본은 우리나라 부엌이기라도 했다.
저기는 양식당 뒤다.
남주가 운영하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뒷마당인데 왜 포기김치가 저기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때만을 위해서 저 곳에 고이 보관해왔던 기분도 난다.
내가 김치싸대기만 너무 웃기게 기억해서 그런데, 이 외에도 우리나라 드라마라면 나오는 모든 요소들이 나온다.
아예 세계의 법칙으로 설정되어서 해당 세계 인물들은 조건 반사처럼 그렇게 행동한다.
술취한 여자가 있으면 업어줘야 하고, 사고를 당할 뻔 했는데 구해주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술이 들어가면 진심을 고백한다.
그리고 세상의 존폐 자체가 종영 전 남주와 여주가 하는 진정한 사랑의 키스에 걸려 있다.
보면서 온갖 패러디와 기믹 지적질 때문에 웃으면서 정말 잘 봤다.
5.
이 드라마에서 또 흥미로웠던 점은 ‘드라마월드’라는 세계의 구축이었다.
드라마월드는 모든 한국드라마의 줄거리가 한 곳에서 현실이 되어 있는 세상이다.
클레어가 처음 드라마월드를 소개받을 때를 보면, 한 교차로에서 몇 개의 드라마의 이야기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나는 이 세계관을 보면서 빌 윌링엄의 《페이블즈》 내지는 ABC의 미드 〈원스 어폰 어 타임〉이 생각났다.
그 작품들 둘 다 모든 동화는 가상의 한 세상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화 속 주인공들이 현실과 픽션 세계를 넘나들면서 양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기본적으로 두 세계가 병존한다.
모든 동화들이 드넓은 세계 구석구석에서 동시에 각자의 이야기를 진행하고, 더 나아가 동화에 따라서 왕국이 갈라져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초반 조금만 봐서 정확한 시스템을 잘 모르겠지만, 《페이블즈》 같은 경우에는 동화의 본 국적까지 영역을 나누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설화들이 모여 사는 곳에 그들의 나라가 있고, 영미권 동화들이 사는 곳에 각 동화의 왕족들이 다스리는 왕국이 있고 인도 설화나 아랍 설화들도 자기들의 권역이 따로 있다.
지금 첫 시즌에 나오는 드라마월드는 한국드라마들이 만들어지는 세상이라고 나왔지만, 더 넓어져도 되지 않나 기대하고 싶다.
드라마월드가 한국에만 국한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대륙에 가면 중드 이야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열도에도 일드가 진행되고 있고 그럴수도 있잖아?
각 나라 드라마마다 따로 찍는 것보다는 저렇게 크로스오버 가능성도 넓혀놓고 하면 혼돈의 카오스려나.
드라마월드의 영역 가정하다가 뻘하게 생각났는데, 미드 동네에는 가고 싶지 않다.
할리우드 예산 단위로 움직이는 드라마들이 다 동시에 일어난다니 공황 장애 생길 거 같다.
6.
이 드라마가 다음 시즌에 뭘 할지 예측을 못하겠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박준이 클레어가 사는 현실에 떨어진다.
처음 클레어가 드라마월드로 왔을 때 기절했던 것처럼 수미상관으로 피날레에는 박준이 기절하는데 귀엽기까지 하다.
부창부수인가.
그런데 막 절절하게 찾아와서 귀엽게 쓰러지든 간에, 클레어가 사는 곳은 미국이잖아…?
왜 한드가 거기에 와서 그러고 있지…?
그리고 다른 나라 드라마도 챙겨줘야 하지 않나.
다른 나라 이야기를 한다고 클레어를 개점휴업 시키고 본진 이민을 보낼 수도 없고.
일단 다음 시즌까지는 한드일 거 같은데, 기본 클리셰는 다 떠먹여줘서 다음 시즌에 나오면 도대체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사극에 떨어져서 색목인으로 궁중에 갔다가 궁중 암투에 뛰어들게 되나 싶다가도, 박준이 가죽케이스 들고 달리는 스파이였으니까 사극은 아닐테고.
그래도 내가 제일 기꺼이 소비하는 드라마의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품이라 다음 시즌에 어떻게 할 지 기대된다.
어떻게 되든 다음 시즌에는 더 큰 약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언젠가 궁중 암투물도 제발 찍어줬으면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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