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Live for Films) |
[※ 이 아래로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스포를 할 예정이므로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일찍 영화관 근처에 갈 일이 있었는데, 시간을 착각하고 가서 또 기똥차게 2시간 가량 비어버려서 때아니게 영화를 보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기왕 온 김에 스펙터를 볼까 했는데, 여기저기서 스펙터를 실제로 보고 멘붕하는 모습을 보고 또 막차나 타기로 했다.
그래서 그 대신 고른 것이 스파이 브릿지인데, 별 생각없이 고른 것치고는 정말 좋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이 들었으나, 역시 내 신조는 몇번 자고 일어나도 생각나는 부분이 정말 좋았던 부분이라는 거라 일부만 쓴다.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정부가 어찌나 이상한 기관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거였다.
우선 이 영화에 비치는 정부는, 강대한 힘이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그 얼굴의 뒤에는 자국민에게 끊임없이 덮어씌우는 공포와 불안감을 통해 상당한 허상성을 보여준다.
모든 진실이 드러나면 현재 정부를 움직이고 있는 주요 위정자들이 원하는대로 모든 일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당연한 추론을 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 끊임없는 프로파간다로 민중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간다.
모든 제도문명은 허상이 상당 부분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허상을 유지하는 주 동력원은 홀로 되지 못하는 인간의 사회성이 아닐까 한다.
사실 부수고 거스르려면 그대로 부수어버릴 수 있다.
궁궐의 담장은 넘지 못할 것이 아니고, 공간을 가르는 그 벽은 그저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러겠노라 결심하면 그대로 부서져버릴 것들이다.
당장 이 영화 내에서 쌓아올리고 있던 베를린 장벽의 최후가 그랬고, 소소하게는 요새 즐겁게 보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 최근 편에서 홍인방이 해동갑족에게 그리 윽박질러대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나의 힘은 너의 믿음에서 나오는 구조라고 해야 하나.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학교 다니는 꼬마들한테까지 핵전쟁에 대해서 만트라처럼 반복하는 게 여실히 보여진다.
그 자료화면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여주는데, 그 어린 얼굴에 비친 다양한 부적인 감정들을 불이 꺼져 어두운 와중에 어스름한 빛만 아이들의 클로즈업된 얼굴에 비춰서 더 비극적으로 보이게 해준다.
또한 정부라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이 끊임없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지붕이고 버팀목이고 주춧돌이 되어라고 정부를 수립하는 건데 이상하게 전자로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러고 나서 그 모든 행위가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 실제로 그 행위의 모든 부분들이 국민을 위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
이렇게 정부가 주도하는 전쟁 하에 하나하나의 개인이 바둑알마냥 희생당하는 와중에, 개인의 몸으로 그에 휩쓸리고, 진실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노력하는 모습이 짠했다.
아니, 왜 민간인은 자기들한테 꼬리가 닿을까봐 이러면서 제대로 난방도 안되는 골방에 가서 지내야 하고 그 와중에 자기들은 세금 써서 힐튼 호텔에 머무는 건데?
딱 그 부분에서도 태도가 아니꼬운데, 짐 도노번이 자기네가 시키는 대로 인형마냥 움직이길 바라는 것도 좀 웃겼다.
소소하게 사진 찍는 스튜디오에 한 번 가본 후, 요즘 조명의 활용에 대해서 항상 감탄하고 있는데, 스파이 브릿지에서 조명을 활용하는 게 정말 좋았다.
채도 낮고 어두운 화면에 짙은 대비를 잘못 쓰면 어두운 느낌이 아니라 팝아트 느낌이 난다.
마블이나 DC에서 각잡고 만드는 영화들은 그냥 상업영화 느낌이지만, 저런 룩을 잡으면 나는 미국 코믹스 기반이오! 하고 소리 지르는 것 같다. 신시티라던가, 300이라던가 그런 영화가 코믹스 기반이었지 아마.
어쨌든 밝은 분위기가 아닌데다 겨울 배경이라 전체적으로 색온도도 낮고 채도도 낮은데, 램프 활용이 참으로 기막히다 생각했다.
특히나 차가운 화면이 많은 영화인데 램프가 참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어두운 화면에서 램프가 피사체의 근처에서 백라이트를 제공하면서 피사체의 세부 외곽을 그려주고 있다.
특히나 어두우면서도 청색광이 많은 화면에서, 램프의 따뜻한 색온도는 어느 정도 인간적이고 감상적인 느낌도 주는 듯 하다.
만약에 그런 따신 느낌의 조명이 없었으면 인간의 노력보다는 비극이 더 크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리고 제일 인상깊게 보았던 장면은 소련에 침투할 전투기 조종사를 거짓말 탐지기에 검사하는 장면이었다.
검사가 이루어지는 방의 어두운 구석에는 연방정부의 요원이 앉아있는데, 화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램프가 요원을 비추면서 뒷면 벽에 드리우는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내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연출이 너무 좋았다.
특히나 잠깐 검사기에서 의심되는 신호가 읽히는 부분에서 그 요원이 상체를 숙일 때 순간적으로 그림자가 벽면을 크게 덮는데, 그 그림자가 완전 제대로 빅브라더의 감시하는 시선의 영향력 같이 느껴졌다.
그 외에는 마지막에 루돌프 아벨을 배웅하면서 도노반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눈오는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에 무채빛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치라이트 아래에 서있는 게 단색 풍경화를 연상시켰다.
루돌프 아벨은 마지막까지 유머를 남기면서 떠나가는데, 평생을 그래도 조국을 위해 바친 사람을 맞는 조국의 모습은 의심이 먼저인 그 장면이 늙은 러시아 스파이가 그리던 그림으로 박제되는 느낌을 받았다.
응답하라 1988도 그렇고, 요즘따라 이런 옛시절의 사회상을 다룬 영화가 더 슬프게 현실감 있게 와닿는다.
어느 나라는 올해는 2015년이라던데^^
그런 의미에서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다가 정말 잘 나왔다.
믿고 보는 톰 행크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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