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Bridge of Spies, 2015] 씁쓸한 냉전 영화

(출처: Live for Films)




[※ 이 아래로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스포를 할 예정이므로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일찍 영화관 근처에 갈 일이 있었는데, 시간을 착각하고 가서 또 기똥차게 2시간 가량 비어버려서 때아니게 영화를 보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기왕 온 김에 스펙터를 볼까 했는데, 여기저기서 스펙터를 실제로 보고 멘붕하는 모습을 보고 또 막차나 타기로 했다.
그래서 그 대신 고른 것이 스파이 브릿지인데, 별 생각없이 고른 것치고는 정말 좋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이 들었으나, 역시 내 신조는 몇번 자고 일어나도 생각나는 부분이 정말 좋았던 부분이라는 거라 일부만 쓴다.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정부가 어찌나 이상한 기관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거였다.

우선 이 영화에 비치는 정부는, 강대한 힘이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그 얼굴의 뒤에는 자국민에게 끊임없이 덮어씌우는 공포와 불안감을 통해 상당한 허상성을 보여준다.
모든 진실이 드러나면 현재 정부를 움직이고 있는 주요 위정자들이 원하는대로 모든 일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당연한 추론을 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 끊임없는 프로파간다로 민중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간다.

모든 제도문명은 허상이 상당 부분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허상을 유지하는 주 동력원은 홀로 되지 못하는 인간의 사회성이 아닐까 한다.
사실 부수고 거스르려면 그대로 부수어버릴 수 있다.
궁궐의 담장은 넘지 못할 것이 아니고, 공간을 가르는 그 벽은 그저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러겠노라 결심하면 그대로 부서져버릴 것들이다.
당장 이 영화 내에서 쌓아올리고 있던 베를린 장벽의 최후가 그랬고, 소소하게는 요새 즐겁게 보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 최근 편에서 홍인방이 해동갑족에게 그리 윽박질러대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나의 힘은 너의 믿음에서 나오는 구조라고 해야 하나.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학교 다니는 꼬마들한테까지 핵전쟁에 대해서 만트라처럼 반복하는 게 여실히 보여진다.
그 자료화면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여주는데, 그 어린 얼굴에 비친 다양한 부적인 감정들을 불이 꺼져 어두운 와중에 어스름한 빛만 아이들의 클로즈업된 얼굴에 비춰서 더 비극적으로 보이게 해준다.

또한 정부라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이 끊임없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지붕이고 버팀목이고 주춧돌이 되어라고 정부를 수립하는 건데 이상하게 전자로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러고 나서 그 모든 행위가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 실제로 그 행위의 모든 부분들이 국민을 위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

이렇게 정부가 주도하는 전쟁 하에 하나하나의 개인이 바둑알마냥 희생당하는 와중에, 개인의 몸으로 그에 휩쓸리고, 진실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노력하는 모습이 짠했다.
아니, 왜 민간인은 자기들한테 꼬리가 닿을까봐 이러면서 제대로 난방도 안되는 골방에 가서 지내야 하고 그 와중에 자기들은 세금 써서 힐튼 호텔에 머무는 건데?
딱 그 부분에서도 태도가 아니꼬운데, 짐 도노번이 자기네가 시키는 대로 인형마냥 움직이길 바라는 것도 좀 웃겼다.



소소하게 사진 찍는 스튜디오에 한 번 가본 후, 요즘 조명의 활용에 대해서 항상 감탄하고 있는데, 스파이 브릿지에서 조명을 활용하는 게 정말 좋았다.

채도 낮고 어두운 화면에 짙은 대비를 잘못 쓰면 어두운 느낌이 아니라 팝아트 느낌이 난다.
마블이나 DC에서 각잡고 만드는 영화들은 그냥 상업영화 느낌이지만, 저런 룩을 잡으면 나는 미국 코믹스 기반이오! 하고 소리 지르는 것 같다. 신시티라던가, 300이라던가 그런 영화가 코믹스 기반이었지 아마.

어쨌든 밝은 분위기가 아닌데다 겨울 배경이라 전체적으로 색온도도 낮고 채도도 낮은데, 램프 활용이 참으로 기막히다 생각했다.
특히나 차가운 화면이 많은 영화인데 램프가 참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어두운 화면에서 램프가 피사체의 근처에서 백라이트를 제공하면서 피사체의 세부 외곽을 그려주고 있다.
특히나 어두우면서도 청색광이 많은 화면에서, 램프의 따뜻한 색온도는 어느 정도 인간적이고 감상적인 느낌도 주는 듯 하다.
만약에 그런 따신 느낌의 조명이 없었으면 인간의 노력보다는 비극이 더 크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리고 제일 인상깊게 보았던 장면은 소련에 침투할 전투기 조종사를 거짓말 탐지기에 검사하는 장면이었다.
검사가 이루어지는 방의 어두운 구석에는 연방정부의 요원이 앉아있는데, 화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램프가 요원을 비추면서 뒷면 벽에 드리우는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내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연출이 너무 좋았다.
특히나 잠깐 검사기에서 의심되는 신호가 읽히는 부분에서 그 요원이 상체를 숙일 때 순간적으로 그림자가 벽면을 크게 덮는데, 그 그림자가 완전 제대로 빅브라더의 감시하는 시선의 영향력 같이 느껴졌다.

그 외에는 마지막에 루돌프 아벨을 배웅하면서 도노반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눈오는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에 무채빛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치라이트 아래에 서있는 게 단색 풍경화를 연상시켰다.
루돌프 아벨은 마지막까지 유머를 남기면서 떠나가는데, 평생을 그래도 조국을 위해 바친 사람을 맞는 조국의 모습은 의심이 먼저인 그 장면이 늙은 러시아 스파이가 그리던 그림으로 박제되는 느낌을 받았다.


응답하라 1988도 그렇고, 요즘따라 이런 옛시절의 사회상을 다룬 영화가 더 슬프게 현실감 있게 와닿는다.
어느 나라는 올해는 2015년이라던데^^
그런 의미에서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다가 정말 잘 나왔다.
믿고 보는 톰 행크스?ㅋㅋㅋ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151229 중세 국어 지원 글꼴

무슨 전문가라서 쓰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확도가 매우 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내 전공은 영어인데 이상하게 주변 사람을 떠올려 보면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컴퓨터로 정리한 노트 등을 한번씩 구경하는데, 보노라니 폰트가 나의 눈을 심히 괴롭게 하였다. 처음에는 왜 안 예쁜 폰트를 쓰는가 했는데, 이 단계에서 공부할 때는 세종대왕께오서 처음으로 한글을 창제하셨을 적부터 공부하니까 단어가 아주 스펙타클했다. 그 뒤로 감탄만 하다가, 필요한 일이 생겨서 한글과컴퓨터에서 지원하는 폰트를 슬쩍 정주행했다.

160610 EdX 강의 수강 후기

EdX 강의 수강 후기 2013년부터 수많은 MOOC 커뮤니티에 잠수를 타고 다녔다. 그러다가 올해에는 각심하고 드디어 강의를 끝내는데 성공했다. 사실 CS50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한 주가 다르게 난이도가 급상승하는데 따라가기 너무 힘들어서 HTML로 갈아탔다. 그리고 정말로 끝내는데 성공했다! 내가 끝낸 강의는 Project101x와 W3C의 X Series 강의 HTML5.0x다. 두 강의를 완강하는데 성공하면서 MOOC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었다.

[Lifeline] 시작이라고 쳐놓고 글 쓰면서 하다가 끝남

(출처: 구글 플레이 스토어) 애플 앱스토어에서 지금, 롸잇 나우 금주의 무료 앱으로 뿌려주고 있다. 게임 몇 개 안 해 봤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신기한 형태의 게임이 아닐까 한다. 되게 웃긴데,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던 스마트워치가 가지고 싶게 만드는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