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발 MOOC인 FutureLearn(이하 귀찮아서 퓨처런)에서 수업을 들어보았다.
언제적 건데 이제 쓰는지 모르겠다.
게릴라 영상작업자를 위한 VFX라는 과목이었다.
인증서를 신청하니 한 달이 지나서 그 먼 동네에서 우편이 도착했다.
종이 주제에 나보다 멀리 다녔다니...
과목 자체가 이제까지 들었던 것과 갈래가 달라서 그런지, 다른 과목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1. 퓨처런 첫 경험
나일주 교수님의 《묵스의 이해》라는 책에 따르면, 퓨처런은 영국에서 원격교육으로 이름 높은 Open University에서 주도하는 플랫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UX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다른 플랫폼과는 달리 교육에 중점을 두고 설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Coursera, Udacity와 EdX에서 강좌를 수강하면 뭐랄까 정말 이과 사이트다.
첫 화면이나 강의 목록이 있는 대시보드는 거진 비슷하다.
그런 부분 말고 개별 강좌 내에서 수강을 하고 있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Coursera는 최근 대대적으로 새 레이아웃을 도입한데다 아카이브 강좌들을 모조리 지워버리면서 그 흔적을 찾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그랬다.
강의 내에서 탐색하다보면 내가 컴퓨터 파일 정리하는 식으로 자료가 나열되어 있다.
실수로 FTP 페이지 들어가서 디렉토리 탐색하는 느낌도 좀 난다.
그에 비교해서 퓨처런은 정말 수업하라고 만들어놓은 느낌이 완연했다.
퓨처런은 몇 달 전에야 제대로 접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생김새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정말 쾌적했다.
진심.
그 다음으로 좋았던 건 iversity에서 베타로 돌린 인터페이스였는데 실험 끝나고 보류하기로 해서 기존 인터페이스로 돌아갔다… 불편하다…
정말 잘해놨다 싶은 건, 강좌 내에서는 강의를 듣는다는 행위 그 자체에 관련되지 않는 부분들은 잘 보이지 않게 설계된 점이었다.
일단 강의에 들어가면 강의에 필요한 부분이 확실하게 보이고 나머지는 위계상 작아지는 느낌이 확실했다.
제일 위에 어디까지 들었다는 진도 표시가 항상 떠있어서 목표감도 좀 더 높고.
2. 강의 운영 주체
VFX 4 Guerilla Filmmakers는 내가 들은 무크 강의 중 유일하게 "이윤추구 기업"과 대학에서 적극적으로 콜라보레이션을 하여 구성된 수업이다.
이 강의는 HitFilm과 노르위치 예술대학이 함께 강의를 운영했다.
노르위치 쪽에서는 강의 운영 노하우, HitFilm쪽에서는 강의 프로그램 및 실제 독립영상제작자와의 연계를 맡는듯 했다.
이 강의 구성에서 한 축을 맡은 HitFilm은 옛날에 영상 제작 쪽에 관심이 있어 찾아보다 알게 된 기업이었다.
가격이 싼 것에 대비해 VFX까지 소화할 수 있는 가성비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1계정 1PC 이용으로 한해서는 무료로 Express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해줘서 기억해두었다.
그런데 퓨처런을 뒤지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 툭 튀어나와서 엄청 반갑기도 했다.
3. 수업 내용
수업의 수준 자체가 아주 심오하지는 않았다.
전반적으로 무크 자체가 이런 추세인듯 하다.
무크는 학습자의 선행수준을 기준으로 필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들을지 예상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학부교양처럼 분야에 대해서 알아가는 수준으로 한 강의를 구성하고, 진짜로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선 심화 과정 트랙을 만들어서 추후 강의를 구성하는듯 하더라.
이 강의도 한 개짜리에다가 4개 모듈밖에 안 되는지라, 정말 기본만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나는 교양 정도의 수업을 원했으니 내 기대에 부합하는 수준이었다고 하겠다.
제일 좋은 점은 단순히 이런 원리만 불러주는 것보다, HitFilm과의 연계를 통해서 내가 실제로 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제공 받은 소스로 내가 빈 작대기에다가 불을 붙여보고 실내에서 달리던 차를 실외로 바꿔보는 활동이 있었다.
프로그램이 공짜고 내가 직접 뚝딱뚝딱 해볼 수 있으니까 해보게 되더라.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까 개념이 잡혀서 다른 걸 이해하는 것도 더 편했다.
예술대학과 기업 측의 인맥을 통해 독립영상제작 수준의 VFX Breakdown 인터뷰를 제공해준 것도 좋았다.
사실 VFX Breakdown 영상은 꽤 본다.
돌아다니는 영상들은 주로 블록버스터인지라, 그런 것들은 봐도 정신이 아득하고 의지를 또각 부러뜨려주는 역할을 좀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여주는 건 그런 막대한 예산의 프로세스가 아니니까, 오히려 할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4. 인증서
여기는 인증서가 독특했다.
다른 곳들의 경우, 인증서 파일을 생성해준다.
그래서 PDF로 저장해놓고 스스로 인쇄하면 된다.
퓨처런은 당사에서 보내준다.
....?
기대도 안했다가 엄청 신기했다.
돈 낸 보람은 여기에서 가장 많이 느꼈다.
MOOC가 옛날에는 전부 무료가 더 많았는데, 요즘은 수익 창출 때문에 인증서 뗄 때 등록비를 안 받는 곳이 거의 없다.
대학교에 등록해서 학점당 수강료 내는 것보다야 엄청나게 싸지만 강의가 무료라고 해서 들었더니 인증서에 돈을 내야 한다고 하면 컨텐츠를 무료로 제공받았음에도 불구,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물건너에서부터 뽑아서 보내준다고 하면 수강료에 배송료까지 넣어서 계산했다는 거니까 좀 덜하다.
함정은 인증서 보내줄 때였다.
나름 평량이 한 100g~120g쯤 되는 종이에 깔끔하게 컬러로 인쇄해서 내부에 마분지까지 겹쳐서 자체 봉투에 인쇄해서 보내주었다.
그런데 봉지에 넣어주지 않았다:D
그래서 우편함에서 꺼낼 때 위쪽 모퉁이가 다 젖었더라.
그나마 일찍 발견해서 저만큼만 젖었지, 더 늦었으면 눈물바다에 떠있는 라이언 기분일뻔 했다.
이렇게 인쇄된 인증서의 상태를 보장할 수 없을 때, 내가 스스로 뽑을 수 없다는 건 단점이라 느껴졌다.
혹시 인쇄할 수 있으면 누가 어디서 인쇄하나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5. MOOC의 마케팅적 가치
이 강의를 보고 강의 과정 자체의 마케팅적 활용에 대해서 많이 느꼈다.
학원에서 재능기부하는 것과 골자가 비슷하지만, 그냥 재능기부라 붙이는 거랑 뉘앙스가 좀 달랐다.
혼자 직접 나서는데 원래 그런 사회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 기업이었을 경우, 홍보 및 마케팅 목적으로 나눔한다는 게 팍팍 느껴져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런데 지식의 공개 공유 흐름에 편승해서 다른 기관과 공동으로 강의를 진행하니까 좋은 일 하는데 같이 참여한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물론 내가 MOOC에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왜곡된 반응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강의에 소프트웨어 기업이 참여하면서 정말 자연스러운 마케팅도 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HitFilm, 있다고 벌써 알던 기업이고 소프트웨어다.
그런데 똑같이 무료로 제공해도 그 전에는 편집 소프트웨어5가 세상에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수업에서 사용하니까 체험 필수가 되면서 직접 써보고 정말 가성비 멋진 소프트웨어라고 인식이 확 바뀌었다.
이게 바로 네이티브 마케팅...? 싶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활용 수업은 어도비, 마이크로소프트, 그런 기업들도 다 제공한다.
사실 더 크고 체계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기업이 할 때는 크게 못 느꼈는데 이 강의를 통해 교육이라는 과정에 새로운 맥락을 더하는 행위를 직접 경험해서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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